<최소한의 이웃> 허지웅, 2년 만의 신작 산문집 발표!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이웃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을까요."라는 작가의말의 한 구절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팬데믹 상황에 내몰려 서로에게 더 각박해진 우리가 잠시 멈춰서 우리를,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게 해 주는 책이다. 작가 역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함께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하나하나 글을 썼다고 한다. 책은 크게 6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다.
1부. 애정_ 두 사람의 삶만큼 넓어지는 일
2부. 상식_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3부. 공존_ 이웃의 자격
4부. 반추_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지나온 길에 지혜가
5부. 성찰_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고단함
6부. 사유_ 주저않았을 때는 생각을 합니다.
'~~한 것 같아'라는 표현을 싫어했다는 작가가, 전작 어디에도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는 작가가, 이번 책에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류의 글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만큼 완곡하게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던 간절한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허지웅 작가의 팬이라면 전작들과는 다른 작가의 문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친절하고 다정해진 허지웅의 글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방송에 나오는 그를 주로 접했다. 그는 나에게 꽤나 호감인 사람이었다. 특유의 시니컬한 태도가 취향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그가 필력이 좋은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의 글을 읽어 본 적은 없었다. 그는 주로 에세이를 출간했고 에세이라는 장르는 나와 맞지 않았다. 뭐랄까 문학을 좋아하는 1인으로서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물론 지금은 나도 많이 바뀌었지만).
그러다 몇 년 전 그가 오랜만에 방송에 나왔는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시간 동안 혈액암 투병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 개인적으로 그때 나 역시 생전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큰 수술을 갑작스럽게 경험하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 있던 상황이라, 방송에 나온 그에게 무척 공감이 되었고 살아주어 고맙다는 터무니없는 감정까지 들었다.
그즈음 그가 자신의 투병 경험을 포함한 <살고 싶다는 농담>이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는데, 궁금했지만 당시의 나는 차마 그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여담이지만 그 당시 나는 <기분이 없는 기분><잃어버린 영혼> 같은 책들을 읽으며 슬픔을 소진해내고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ㅎㅎ <최소한의 이웃>은 일단 잘 읽히는 책이다. 그의 이전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음에도, 그의 문장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친절하고 다정해진 허지웅 씨였다. 한 인터뷰에서, 이번 책은 어떤 특정 독자군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데, 그들이 책을 끝까지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 하나의 주제가 한두 페이지로 끝나는 글들로만 채웠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이번 책은 호흡이 짧아 부담이 없다. 그러나 부담 없는 편안한 문장들이 많은 공감과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공감한 문장들
왜 내가 그런 병에 걸려야 했던 건지 알 수 없는 것처럼 휘파람을 갑자기 불 수 없게 된 이유 또한 알 수 없었습니다. ...뭔가를 영영 잃어버린 기분이 들어 슬펐습니다. ...다만 이제는 세상에 애초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 일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압니다. (p.12~13)
살다 보면 이렇게 놀라운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놀라운 이야기의 이면을 들여다볼 때마다 거기 깜짝 놀랄 만한 우연과 확률이 아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또렷한 의지가 존재한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p.24)
사랑의 반대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누군가는 증오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무관심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사랑의 반대말이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p.34)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은 어리석은 거니까요. 사랑은 두 사람의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삶만큼 넓어지는 일일 겁니다. (p.49)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이 거창한 게 아닐 겁니다. 꼭 친구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같은 편이나 가족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남을 이해하는 태도, 그게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의 전모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p.128)
정의와 상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자를 믿어선 안 됩니다. 오직 정의와 상식을 고민하고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p.281)
지혜란 책 속의 정보 값에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저자의 아이디어와 내 생각이 만나 동의와 비판의 과정을 거치면서 생기는 겁니다. (p.290)
여러분 모두 내 안의 평정과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밝은 여백을 만나기를 바라며.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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