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에세이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글쓰기에 관한 9인 작가의 9가지 이야기

모래날개 2022. 10. 2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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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사진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외8인/ 244쪽/ 유선사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글쓰기에 관한 9인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쓸까?

이 책은 어쩌면 작가들이 책으로 내기 싫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책을 읽은 첫 느낌이다. "이 책은 글 쓰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일하고 살아가는 마음, 좌절하고 사랑하는 순간에 대한 9가지 이야기."라는 출판사의 소개처럼 책 속에는 글쓰기에 관한 아홉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얼핏 작가라면 여유롭게 테이블에 앉아 갓 내린 커피도 한잔 곁에 두고 느긋하게 풍경도 바라보며 여유롭게 글을 쓸 것 같지만, 그들이라고 사실 우리와 크게 다를까? 물론 타고난 재능 혹은 노력한 만큼의 경험치는 더해졌겠지만, 텅 빈 파일을 마주하고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할 때의 마음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그런 작가들의 너무나 사적인 순간들을 보여준다. '아, 그래 작가들도 그럴 수 있겠지.'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라고? 정말 우리랑 똑같네!' 하는 느낌이 더 강했다고 할까. 누구나 좋아하는 일, 혹은 잘하는 일이 하나쯤은 있고(직장에서 루틴처럼 그냥 해내는 일일지라도), 그런 일들도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있듯, 글쓰는 걸 직업으로 갖고 있는 작가들도 결국 우리와 똑같음을 느끼고 안도하게 되는 책이랄까.ㅎㅎ

 

아홉 작가의 솔직한 글쓰기 이야기, 아래 목차 중에 평소 좋아하던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의 작업실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전고운_ 내일은 내일의 우아함이 천박함을 가려 줄 테니

이석원_ 어느 에세이스트의 최후

이다혜_ 쓰지 않은 글은 아직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다

이랑_ 오늘도 춤을 추며 입장합니다, 쓰기 지옥

박정민_ 쓰고 싶지 않은 서른 두 가지 이유

김종관_ 꾸며진 이야기

백세희_ 무리하기, (마)무리하기

한은형_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임대형_ 비극의 영웅

 


편애하는 마음을 담아!

몇 년 전에, 꽤 오래전인 것 같은데, 출근길 라디오에서 어떤 배우의 인터뷰를 들었다. 이름을 들어도 얼굴이 떠오르지는 않는 배우였는데, 책방을 하고 있다는 얘기에 갑자기 관심이 생겨서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바로 박정민 배우님. 그때부터 뭔가 친숙한 기분에 배우님 소식에 귀 기울이게 되고 책방 인스타도 팔로하고 그랬는데, 지금 오랜만에 다시 찾아보니 책방을 접으셨는지 인스타 계정은 없어진 듯하다. 당시에는 책방에 직접 계시는 일도 많았던 것 같은데 요새 바빠지셔서 접은 걸까. '책과밤낮'이라는 이름의 상수동에 있던 서점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최근 이 책을 선물받아 다시 배우님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유명 작가들 사이에 깍두기로(배우님 표현임 ㅋ) 쓴 거라지만, 나는 배우님 글이 좋았다. 오글거리는 전작(<쓸 만한 인간>, 2016)에 비해서는 확실히 좋았고 ㅎㅎ, 특히 감정을 봉인하는 도구로 글을 쓴다는 부분이 좋았다!

 

밑줄 그을 말들이 너무 많은 책이었지만(독서 습관상 실제로 밑줄을 긋진 않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작가님의 글을 최애로 꼽고 싶다. 이 책은 작가님들의 쓰고 싶은 순간, 아니 써지지 않는 순간에 관한 기록 같은 책이라, 공감가는 문장이 너무 많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무겁게 하는 책이었는데(이건 아마도 직장인으로 있을 때 작가님들께 마감을 독촉하는 입장이었던 탓에 ㅎㅎ), 박정님 배우님 글은 그 사이 쉬어가는 느낌이 강해 뭔가 더 편안하고 좋게 다가왔던 것 같다.   

 


고개가 끄덕여진 문장들

세상 모든 일처럼 글 쓰는 직업에도 신비는 없다. 일을 하고 돈을 받는다. 유난할 이유는 없다. (p.76)

 

쓰고 싶은 기분? 그런 게 뭐야? 원고를 쓰다가 문득 고독해지면 지금까지 작업한 원고량을 원고료로 환산해 본다. 아, 이제 5만 원어치 썼군. 오늘 10만 원어치는 써야 하지 않을까? (p.86)

 

하지만 쓰지 않은 글의 매력이란 숫자에 0을 곱하는 일과 같다. 아무리 큰 숫자를 가져다 대도 셈의 결과는 0 말고는 없다. 뭐든 써야 뭐든 된다. (p.92)

 

그렇게 쓰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메모장에는 쓰는 것이 모순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봉인의 한 과정이다. 속 썩이는 온갖 것들을 적은 후 금고 안에 넣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그 감정들은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봉인된 것이다. (p.127)

 

내게 창작은 무리하기와 마무리하기다. ... 쓰기를 미루는 나를 채찍질하며 에너지를 무리하게 소진하고 거기서 오는 불안을 에너지 삼아 결국 마무리해 내는 것.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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